여명랑 저자는 광동제약, CJ, 롯데칠성, 롯데웰푸드 등에서 25년 동안 F&B와 소비재 시장의 브랜드 전략, 신제품 개발, 마케팅, 사업 운영을 이끌어온 마케터이자 사업 리더입니다.《데이터 투 하트》는 그가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가 넘치는 시대에 마케터가 다시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정리한 책입니다.
그가 말하는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남긴 행동의 흔적이고, 말과 실제 선택 사이에 남아 있는 모순이며, 히트상품이 만들어지기 전 시장에 먼저 나타나는 신호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데이터 투 하트》를 쓰게 된 계기, 히트상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봐야 하는 소비자의 신호, 그리고 앞으로 마케팅 의사결정에서 데이터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Q1. 《데이터 투 하트》를 쓰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광동제약, 대웅제약, CJ, 그리고 지금의 롯데칠성과 롯데웰푸드에 이르기까지 지난 25년 동안 마케팅 최전선에서 깨달은 단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교과서적인 마케팅 문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성별, 나이, 소득 같은 거친 인구통계학적 기준으로 시장을 쪼개고(STP),제품과 가격 전략(4P)을 짜서 대중(Mass)에게 일방적으로 트렌드를 제안하면 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나 집단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기만의 독립된 가치'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1인(판단)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그먼트 안에도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욕망이 파편화되어 움직이는 시대입니다.
현장에서 사원, 대리급 주니어 마케터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운 장면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회사에서 엄청난 비용을 들여 구축한 데이터 대시보드는 24시간 돌아가고 있는데, 정작 실무자들은 기획서 한 장을 쓰지 못해 밤을 새웁니다.
데이터라는 차가운 숫자더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죠. 숫자는 '무엇(What)'이 일어났는지는 명확히 보여주지만, 소비자가 '왜(Why)'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절대 스스로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데이터의 종착역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Heart)이어야 한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본질을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서나 뻔한 이론서가 아니라, 데이터라는 차가운 바다 위에서 어떻게 소비자의 숨겨진 마음속 '0.1평'을 찾아내고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지 그 치열했던 '실무적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 책이 "매일 대시보드와 상사의 반려 기획서 사이에서 방황하는 실무 마케터들에게 따뜻하고 명확한 나침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계기입니다.
Q2. 데이터를 숫자가 아니라 소비자 행동의 흔적으로 본다고 하셨는데, 히트 상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봐야 하는 소비자의 신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히트 상품을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소비자의 ‘말과 행동 사이의 모순(Contradiction)’이라는 신호를 포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마케터가 신제품을 기획할 때 소비자를 모아놓고 물어보는 전통적인 리서치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는 질문자의 의도대로 답할 뿐입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해 보이는 정답을 무의식적으로 꾸며냅니다.
예를 들어 설문조사에서 "당신은 건강을 위해 당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겠습니까?"라고 물으면 90% 이상이 "그렇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진열대 앞에서의 실결제 데이터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죠. 소비자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닙니다. 그들도 자기 자신의 진짜 욕구를 미처 언어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자는 소비자의 입(말)을 보지 말고, 그들이 디지털 세상에 무심코 남긴 ‘무의식의 발자취’를 장면(Scene) 단위로 분석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소비자 마음속 숨겨진 결핍, 즉 '0.1평'의 신호라고 부릅니다.
'새로' 소주의 비하인드 신호
MZ세대의 소셜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 발견한 신호는 모순된 '술부심'이었습니다. 그들은 SNS에 술병을 늘어놓으며 "나 주량 세다"는 것을 자랑(인싸 욕구)하고 싶어 하면서도, 이면에는 "내일 아침 상쾌하게
출근하고 싶다, 살찌기 싫다"는 강한 불안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 모순의 틈을 포착했기에 '저도주+제로 슈거'라는 새로의 독보적인 콘셉트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칸타타 콘트라베이스'의 비하인드 신호
기존 커피 브랜드들이 프리미엄 원두와 향미를 리서치할 때, 저는 직장인들이 사무실 책상 위에서 내뱉는 날것의 언어(Raw VOC)를 봤습니다. "오후만 되면 커피가 모자란다", "편의점 커피는 왜 다 한입 거리냐"라는 신호였습니다. 커피를 '음미하는 기호품'이 아닌 '하루를 버티기 위한 생존형 노동 음료'로 재 정의하여 대한민국 대용량 페트 커피 시장의 새 판을 짤 수 있었던 결정적 신호였습니다. 가장 먼저 봐야 할 신호는 통계학적 숫자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 미안함, 그리고 부끄러워하면서도 갈망하는 '숨겨진 욕구와 감정의 결'을 읽어내는 것이 마케팅의 시작이자 히트 상품의 절대 공식입니다.
Q3. 앞으로 마케팅 의사 결정에서 데이터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시나요?과거의 데이터가 마케팅 활동의 결과를 사후에 평가하는 '채점관'의 역할이었다면, 앞으로의 데이터는 가설을 검증하고 미래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선제적 내비게이션'의 역할로 완벽히 전환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AI가 모든 것을 예측해 줄 것'이라는 빅데이터 만능주의에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구글 플루 트렌드가 독감 예측에 실패했듯, 정해진 패턴 밖의 수많은 변수와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숫자로만 100% 예측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앞으로의 마케팅 의사 결정에서 데이터는 미래를 맞히는 '점쟁이의 수정구슬'이 아니라, "실패할 확률을 극단적으로 낮춰주는 합리적인 솔루션"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더불어, 데이터의 역할 변화는 기업의 조직 문화와 마케터의 생존 조건까지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1. '남의 데이터'에서 '우리의 데이터'로의 전환 (자기 데이터화)
외부 리서치 기관이 정제해서 가져다주는 거친 리포트는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현장의 실무자가 직접 정량 데이터(행동)와 정성 데이터(맥락)를 결합하고 분석하여 조직 내에서 데이터라는 '공용어'로 소통할 수 있는 '자기 데이터화(Data Operationalization)' 역량이 의사 결정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2. 리스크 관리로서의 데이터 (감정 통제)
프라이버시 패러독스 사례처럼, 미래의 데이터 의사 결정은 단순한 효율성을 넘어 '소비자의 부정적 감정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기술적 고도화만큼이나 법적·윤리적 선을 지키며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이터 거버넌스가 중요해집니다.
3. 차가운 데이터와 뜨거운 직관의 협업 (Data to Heart)
AI가 가장 선호도가 높은 맛, 가장 멋진 디자인의 데이터를 조합해 준다고 해서 히트 상품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예쁜 눈, 코, 입을 합쳐놓았을 때 매력 없는 얼굴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데이터가 차가울수록 마케터의 직관은 뜨거워야 합니다. 미래의 마케팅 의사 결정은 AI가 차린 데이터라는 밥상 위에서, 인간 마케터가 '인류학적 관찰과 감성'을 더해 최종적인 가치를 세상에 선포하는 '융합형 리더십'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여명랑 저자의 이야기는 《데이터 투 하트》가 단순한 마케팅 이론서가 아니라, 25년 F&B 현장에서 반복해서 마주한 질문의 기록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데이터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어떤 불편함과 욕구가 선택으로 이어졌는지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일만이 아닙니다. 소비자의 말과 행동 사이의 차이를 읽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마음의 신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데이터 투 하트》가 말하는 방향도 그 지점에 있습니다. 차가운 데이터에서 출발하되, 결국 사람의 마음에 닿는 해석으로 나아가는 것. 히트상품은 숫자를 맞히는 일보다, "소비자의 행동 뒤에 숨은 이유"를 발견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